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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음악

TEEN TROUBLES - 검정치마

마비에 2022. 10. 6. 23:26

다 끝난 것에 대한 늦은 이별 선고

검정치마 <TEEN TROUBLES> 리뷰



조휴일은 이번 앨범을 90년대로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했다. 하지만 이 노래들이 러브레터라면 그건 사랑의 끝을 말하는 이별편지일 테다. 내가 이렇듯 단정 짓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집 이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휴지기를 가지던 검정치마는 <TEAM BABY>에서 ‘나랑 아니면 누구랑 사랑할 수 있겠니’라며 일방적인 한 편, 무조건적인 사랑의 달콤함을 노래해 지지 받았다. 하지만 다음 앨범 <THIRSTY>에서 ‘사랑 빼고 다 해줄게 더 지껄여 봐’라며 사랑의 태생적 무의미함이 아니라 최종적 의미 없음을 드러내 논란을 자처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매된 정규 앨범 <TEEN TROUBLES>은 어떨까? 그 모든 것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이 파괴적인 욕구로 충만하다. 그 자기파괴적 욕구를 여실히 드러내는 이미지는 바로 불이다. 정신 없는 앨범 아트에는 데모 앨범이었던 <My Feet Don’t Touch the Ground>의 앨범 커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주택이 신성모독적인 상징과 욕설이 적힌 낙서와 함께 불타고 있다. 방화를 종용하는 “매미”나 “불세례” 같은 노래의 가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영문 모를 티라노 사우르스까지… 정신 없는 것은 앨범 커버 뿐만이 아니다. 18곡이라는 대량의 트랙에는 유기성이라고는 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백화점식 앨범 구성이라는 변명이 가능하겠지만, 검정치마는 여태까지의 앨범에서 흐름이라고 할만한 것은 착실하게 넣어왔고 그런 식으로 우리를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으로 이끌어 왔다. 1집과 2집의 차이(개러지 펑크와 어쿠스틱 팝), 3집과 4집의 차이(사랑의 예찬과 냉소)의 차이만 생각해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심해야 할 것은 정신 없음 자체가 이 앨범의 주제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여기까지 캐치한 이 앨범의 테마를 난잡함과 자기파괴라 해 두고 이 두가지를 연결지어 보자.

첫 트랙 “Flying Bobs”는 이례적으로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만약에 그때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다면 난 당장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마 같은 실수들을 또 다시 반복하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전부 다 제가 원했던 거예요’라며 회환과 후회 없음을 동시에 말하는 이 나레이션은 이 앨범이 시작부터 과거를 바라보고 있음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언뜻 감상적인 이 정서는 다음 트랙 “불세례”에서 펑크 록과 함께 ‘쾌락이 지나간 자린 수줍던 우리의 무덤’이라며 매장당하고 만다. 그런가하면 앨범은 다시 치기 어린 듯 오만한 “어린 양”, 옛 추억들을 담은 듯한 “Sunday Girl”, “Friends in Bed”를 거치며 과거를 부른다. 하지만 이마저 “매미들”에 이르면 다시 분위기는 전복된다. 말하자면 검정치마는 우리를 감상적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앞서 말한 것들이 모두 사라졌음을 똑똑히 상기하기를 요구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손으로 불을 질러 그 모두를 ‘밝고 짧게 타’오르게 하는 편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쯤되면 전작의 “Everything”이나 “나랑 아니면” 같은 곡들을 떠올리게 하는 드림 팝 “Garden State Dreamers”나 조금 뒤틀려 있어도 분명히 청춘의 사랑을 담은 밝은 곡 “Powder Blue”에 이르러도 앨범의 전체적 맥락에서는 곱게 들리지 않는다.

“Electra”에서 짝사랑의 상대였던 것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우리 말고는 아무도 널 안 찾아, 우리 말고는 아무도 널 몰라’라며 일갈하는 장면은 이 앨범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하는 하나의 클라이맥스다. 선망하던 이성과 그 이성의 진부해짐이라는 펄프의 “Disco 2000” 식의 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듯한 이 곡에서 주어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점은 이게 결코 조휴일의 사적인 이야기만은 아님을 넌지시 내비친다. 그렇다면 Electra가 가르키는 것은 결국 90년대를 포함한 모든 과거의 록키즈들에게 선망받았지만 이제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 록 음악 그 자체다.

‘록 윌 네버 다이’라는 구호가 있지만 이는 ‘북한은 세계 최고의 지상낙원’ 같은 프로파간다처럼 이미 생명력을 잃었음을 방증해 구차할 뿐이다. 록은 확실하게 음악의 주류에서 쫓겨났다. 비주류의 주류의 자리 역시 힙합에 찬탈되고 싱잉랩이라는 이름으로 참칭당한지 오래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TEAM BABY>의 무난함과 그 흥행에서 록의 부활의 가능성을 봤고 <THIRSTY>의 천박함과 도발에서 반항의 음악이라는 록을 추억했다. 하지만 그게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란 사실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에 난잡하고 잡다하게 90년대를, 록을 미련하게 소환하고 모두 불태워 파괴하는 것이 이 앨범이 원하는 바다. 하지만 대개 음악 플레이어의 재생 모드는 모두 반복이고 LP나 CD 같은 과거의 유산을 모으며 유난을 떠는 록키즈들의 플레이어에도 오토 리버스 기능이 장착 되어있을테니 다시 1번 트랙으로 돌아오자. ‘만약에 그때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다면 난 당장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아마 같은 실수들을 또 다시 반복하겠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전부 다 제가 원했던 거예요’ 미련한 일임을 알았다 해도 모두 불태우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에 난잡하게 모아놓은 옛 것들이 가득한 <TEEN TROUBLES>을 반복해 들으며 과거를 미련하게 떠올릴 테다. 앨범은 그렇게 목표하던 바에 하나도 근접하지 못했지만 야간자습시간에 스트록스, 악틱 몽키즈, 포티스헤드, 뱀파이어 위켄드, 메릴린 맨슨, 비요크, 라디오헤드 같은 가수들의 넘버를 들으며 남모를 우월감을 느꼈던 ‘우리’가 즐겨 들을 앨범이 하나 더 추가된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미련만으로는 설명하지도, 또 결국에 파괴하지도 못할 감정과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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