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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 & TJ/SR 2집

01. 虚言症 허언증

마비에 2022. 1. 9. 21:54

 

초회한정판. 원래의 표지에 빨간색 필터를 강하게 씌웠다.

 

 

しかし何故にこんなにも眼が乾く気がするのかしらね
黄色の手一杯に広げられた地図には 何も無い
そして何故に雨や人波にも傷付くのかしらね
魚の目をしているクラスメイトが 敵では 決して無い

線路上に寝転んでみたりしないで大丈夫
いま君の為に歌うことだって出来る
あたしは何時も何時もボロボロで生きる

例えば少女があたしを憎む様な事があっても
摩れた瞳(め)の行く先を探り当てる気など 丸で無い

徒(いたずら)に疑ってみたりしないで大丈夫
いま君が独りで生きているなんて云えるの
君は常に常にギリギリで生きる
あたしは何時も君を想っているのに

髪の毛を誘う風を何ともすんなりと受け入れる
眩しい日に身を委せることこそ悪いこととは云わない

無理矢理に繕ってみたりしないで大丈夫
いま君の為に歌うことだって出来る
あたしは何時も何時もボロボロで生きる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눈이 마르는 기분이 드는 걸까
노란색 손에 가득히 펼쳐진 지도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어째서 비나 인파에마저 상처를 받는 걸까
물고기 눈을 한 반 친구가 적일 리는 절대로 절대로 없어

 

선로 위에 드러누워 있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너를 위해 노래 정도는 부를 수 있어
난 언제나 언제나 너덜너덜하게 살아가

 

설령 소녀가 나를 미워하는 일이 있더라도
닳아버린 눈이 향할 곳을 찾아낼 생각 따윈 전혀 없어


괜히 의심하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네가 혼자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넌 언제나 언제나 아슬아슬하게 살아가
나는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있는데

 

머리카락을 꾀어내는 바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
눈부신 날에 몸을 맡기는 것을 나쁜 일이라곤 말할 순 없어

 

억지로 꾸며내거나 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너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난 언제나 언제나 너덜너덜하게 살아가


시이나 링고의 대표 앨범이라고 하면 역시 마루노우치 새디스틱이 수록된 1집 <무죄 모라터리엄>이겠지만 매니악한 분들 사이에서는 2집 <승소 스트립>이나 3집 <정액 밤꽃 시멘트>가 꼽히는 경우가 많죠. 3집의 호불호를 생각하면 2집은 판매량으로 보나 평가로 보나 링고의 최전성기 작품으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2집과 3집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물어보면 때대로 달라지지만 번 포스팅을 준비하며 여러 번 돌려 들은 결과 <승소 스트립>이 역시 그녀의 최고작인 듯합니다.

 

<승소 스트립> 「勝訴ストリップ」라는 제목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승소와 스트립에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다고 앨범 제목으로 썼고, 이게 250만 장이나 팔린 걸까요? <무죄 모라터리엄>은 미성년의 보류라는 피터팬 콤플렉스적인 함의가 담겨 있다고 추측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승소와 스트립은 정말 잘 붙지 않는 단어입니다. 재판에 이겨 기쁜 마음에 다 벗고 춤이라도 춘 걸까요. 그렇다면 그 재판은 무엇에 관한 것이었을까요. 뭔가 의미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 이외에는 그녀의 텍스트란 모든 게 불분명하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앨범 아트 마냥 빨간 막 안에서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에 어울리는 앨범의 첫곡이 바로 이 곡 '허언증'입니다.

 

이 곡 역시, 1집과 마찬가지로 그가 고등학생일 때에 작곡한 곡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의 의도된 시끄럽고 난잡한 편곡에서 비롯된 불안정성 덕에 1집과 유사한 스펙트럼에 있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그런 탓에 1집의 여러 곡과 마찬가지로 후쿠오카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신문에 선로에서 드러누워 자살을 시도한 소녀에 대한 기사를 읽고 이 가사를 썼다고 하네요. 그 당시에 제목은 <괜찮아大丈夫>였다는 사실로 미루어보면 링고는 그 소녀에게 어떤 우울한 감정을 이입하거나 위로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 가사를 썼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후에 링고는 조금 이상한 말을 덧붙였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무렵의 생각했던 것이 거짓말이 되어버린 걸까요?”라고 말이죠. 대개의 경우에 위로는 동정에서 비롯되고 동정이란 자기도취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흔히 천박해지곤 하죠. 신문에서 봤다는 이유로 함부로 자신의 우울을 타인에게 이입해 어림짐작하거나 동정을 건네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일이니까요. 이 곡의 마지막은 결국에 너, 그러니까 선로에 누워있던 소녀가 아니라 노래를 부를 뿐인 내가 너덜너덜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남을 위한다는 위로가 결국에 거짓이고 사실은 본인을 향한 위로임을 자인함 셈입니다.

 

하지만 미숙함을 깨달았을 때의 대처가 저는 멋지다고 생각해요. 미숙한 본인의 생각을 숨기고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제목을 <허언증>으로 바꿀 , 가사는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잘못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승소 스트립> 무슨 의민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미성년의 얼버무림을 어떻게든 연장하고 싶다는 <무죄 모라터리엄>보다는 성숙한 의미임을 확신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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